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제국 (문단 편집) === 전쟁 피해자들의 관점 === >나는 당시에 일본인을 죽이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내가 전쟁에서 졌더라면, '''나는 전범으로 기소되었을 것이다.''' 모든 군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도덕적 측면에 대하여 생각한다. '''모든 전쟁은 부도덕하고''' 당신이 그것을 신경쓴다면, 당신은 좋은 군인이 아니다. >---- >[[커티스 르메이]], 전후 [[일본 본토 공습|작전]]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의 답변 [[https://dailian.co.kr/news/view/1087571/|출처]]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과 함께 추축국 양대 전선의 대표격 국가로서 전쟁을 주도하고 숱한 전쟁범죄들을 일으켰고 또한 동시에 자국의 민간인들에게도 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 오키나와 주민의 1/4를 죽음에 몰아넣었고, [[커티스 르메이]]의 무차별 공습에 의해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며 결국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두 개의 도시가 수십만명의 주민들과 함께 증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우]]와 같은 재일 조선인들도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었다. 르메이 본인도 자신의 작전에 대하여 '패전했다면 전범이 되었을 것, 어차피 모든 전쟁은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발언하였을 정도로 무척이나 참혹한 피해가 이어졌었다. 현재 [[연합국]]이 승전하여 그들이 구축한 세계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선악구도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 종종 거론된다. 하지만 또한 [[이탈리아 왕국]]은 [[추축국]]의 주역이자 [[파시즘]]의 원조로서 [[반면교사]]인 점은 비슷하나, 최소한 일제와 나치 독일과 같은 비인륜적인 악질 국가로 여겨지진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관해서는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전쟁 중에 실책만 가득 저지르고 그다지 한 일도 없는 나라]]"라는 인식 때문이지만, 또한 이탈리아군이 독일군, 일본군과 같이 조직적인 대규모 학살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탈리아군도 마냥 깨끗했던 것은 아니고 에티오피아에서의 독가스 살포나 소수민족 탄압 등 악행을 행하기는 했으나 최소한 국가나 군대가 주도해서 대량학살극을 광범위하게 저지른 나치와 일제에 비하면 훨씬 양호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세력이 워낙 미약했고 일반 병사들과 국민 수준의 파시즘 경도 현상도 적었으며 무솔리니 역시 히틀러와 같은 미치광이 학살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탈리아군은 독일군과 일본군은 물론 마이너 추축국인 헝가리군이나 괴뢰군인 크로아티아군, 연합군 중 가장 악랄했던 소련군보다도 인륜적으로 훨씬 나았다.[* 소련군은 피난가는 민간인들에 대한 약탈과 학살, 부녀자 강간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말기 독일과 만주에서 이루어진 소련군의 대규모 전쟁범죄는 독일인, 일본인(+조선인)같은 침략자·식민자와 그들의 일행들 뿐만 아니라 폴란드인, 중국인같은 원주민들에게도 행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전범국]]이라는 신조어는 추축국이었던 파시스트 이탈리아보다 오히려 연합국이었던 소련에 더욱 잘 어울린다.] 일제가 나치 독일과 동일선상에서 비판받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규모의 전쟁범죄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정부 주도로 [[유대인]]이라는 민족을 지구상에서 절멸시키기 위해 기계적으로 [[학살]] 시스템을 도입해 점령지 내 [[유대인]], [[집시]], [[장애인]], [[공산주의자]] 등에 대한 조직적인 제노사이드를 자행했으며, [[폴란드 침공]]과 [[독소전쟁]] 당시 [[우생학]]에 기반해 슬라브인과 같은 소위 '열등한' 인종([[운터멘쉬]])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독소전 당시 학살당한 소련 민간인이 천만 단위였고 2차 대전기 소련인의 14%, 폴란드인의 17%가 목숨을 잃었다. 이는 물론 [[홀로코스트]]와 전혀 별개였다.] 한편 일본 제국은 [[난징 대학살]]이나 [[마닐라 대학살]] 등 점령지 내 민간인 대량학살은 물론 [[의학]]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악랄한 [[이시이 시로|생체 실험]]을 자행했고 치치시마 섬에서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식인을 행했으며 [[군인]]들을 위안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 위안부]]라는 것을 만들어 [[동아시아]] 각국의 [[여성]]들을 취업사기와 강제 납치로 잡아갔고, 점령지 원주민인 동남아인들은 물론 [[영국]], [[네덜란드]] 여성들, 심지어 [[호주]]인 포로 등 백인 여성들도 색출했다.[* 다만 영국, 네덜란드 또한 해당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려 진출했던 것이기 때문에 순수 피해자인 동아시아의 위안부 피해자들과는 다소 논점이 다르다. 물론 전쟁범죄이자 성범죄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에 일본이 크게 비판받는 건 마찬가지다.] 일본 제국이 점령지의 서구권 여성들까지 잡아다 위안부로 썼다는 사실은 명백히 기록으로 남았고, 이는 현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서 서구 국가들에게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는 가장 큰 까닭이다. 워낙 행적이 악랄했던지라 네덜란드나 영국에서도 중장년층 이상에서는 본토를 유린한 독일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본에 대한 반감이 다소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